땀의 증거자이신 최양업(토마스)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였으며,
초대교회 신앙선조들의 피와 땀이 어린 거룩한 장소인 베티 성지
오늘의 첫 순례지는 베티성지 무명순교자14인의 묘, 오반지 바오로묘 참배후, 옛 성당겸 신학교를 순례후 배티성지로 이동 합니다
천주교 박해때 순교의 영광을 얻은 무명순교자14인의 묘
베티골짜기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비밀리에 신앙생활을하던 신자들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배티고개 너머 안성 병목골로 피신하여 숨을 죽인채 살아가야만 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신자들이 숨어살던 병목골이 발각되고 포졸들이 몰려오자 허둥지둥 산속으로피신하던 신자들은 이곳 저곳에서 습격을 받아 창과 방망이,쇠도리깨에 두들겨맞으면서 고귀한 목숨을 하느님 대전에 바쳤습니다
포졸들이 물러가자 살아남은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급하게 수습하여 이 고갯마루에 묘를 만들었다.그리고 박해가 끝난뒤에는 해마다 이곳을 찾아와 벌초를 하면서그들의 삶과 신앙을 본 받으려했습니다
베티 순교성지에서는 이러한 교회의 전승과 전문가들의 검증을 토대로 이 무명순교자들의 묘를 순례지로 단장하였고 충청도 에서는 2011년 이곳을 문화제로 지정했다.
14인 무명 순교자 맞은편에는
병인박해때 순교한 복자 오반지 바오로의 묘가 있다
오반지 바오로는 충청도 진천군 반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해주 오씨 집안출신으로 선대의 가산 덕분에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모두 탕진하고 40세가 훨씬지나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병인박해때 순교한 오반지 바오로시신은 아들과신자들에 의해 지장골 인근 야산에 매장되었다가 151년이 지나 진천성당에안치되었고 이후 베티 성지에 봉안 되었다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
한국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요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1836년유학을 떠나 마카오와 만주 소팔가자등지에서 신학과 서양의 근대학문을 배운 한국최초의 유학생이었다
최양업 신부는1849년4월15일 상해 장가루 성당에서 서품을 받으시고 7개월가량 중국 차쿠성당에서 중국인들을 사목하시다 드디어 고국을 떠난지 13년만에 조선에 입국하시게 됩니다.
귀국하자마자 잠시 쉼도 없이 페레올 주교님과 다블뤼 신부님을 뵙고 교우촌 순방을 시작 하십니다. 127개나 되는 전국 방방곡곡의 교우촌을 찾아
고해성사와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로부터 명을 받아 1853년부터 배티를 거처로 삼아 디블뤼 신부님이 세우신 조선 최초의 신학교를 맡아
신학생을 가르치셨다
1854년에는 베티신학교에서 세명의 신학생을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1856년에는 이곳 신학교가 베론으로 옮겨지고
그뒤로 메스트로 신부님,페롱신부님이 이곳을 방문 하셨고
1858년부터는 프리티콜라 신부님이 이곳을 사목기점으로 정하시어 머무르셨습니다.
지금은 초가집으로 복원되어있고 최양업신부의 부친이신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흉상을 제작해 놓았고 반대편에는 십자가의 길이 마련되어있다.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뜻이다 . 충북 진천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넘어가는 이곳
고개 주변에 돌 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고 있는 성당이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1861년 6월15일 만 40세 나이로 선종하신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1년 4월 15일 기공식을 하였고 1년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고딕 양식 기념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대성전에 들어 서면 제일먼저 최양업 신부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커다란 스테인 그라스가 눈에 띤다 그리고 대성당 안의 양쪽 스텐드그라스는
최양업 신부 탄생부터 선종까지의 생애를 말해주고 있다
대성전을나와
윗성당이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배티성지 중턱에 자리한
팔각지붕의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1841년3월1일 탄생)을 만나볼수 있다
탄생 성당은 베티성지가 개발되고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이곳 지하 경당 좌측에는 최양업 신부 초상화와 아버지 최경환 프란티스코 유해 ,
김대건 신부 유해, 오반지 바오로유해가 모셔져 있고
우측애는 성체조배실이다.
선종150주년성당에서 탄생175주년성당으로 올라가는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최양업신부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의 외관은 최초의 조선대목구 신학생인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세명의 신학생이 함께 유학했던 마카오의 조선대목구신학교(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건물과 그 인근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 앞에 놓여있는 양업교는 마카오와 조선을 이어주는 배를 상징하며,
그 아래를 흐르는 양백천 상류는 서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 최양업 박물관은
2012년 10월 10일에는 기공식을 가졌고, 2년후 4월 11일 순례자들이 누구나 '보고 느끼고 기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체험관으로서의 박물관 축복식을 가졌다.
배티성지 성모상들은 거의 모두가 감곡 매괴성당의 '칠고의 성모상'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는 매괴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재직하셨던 김웅렬 신부님께서 2010년8월~2017년8월까지 이곳 배티성지에서 사목 하시던 동안에 추진된 것입니다.
지금은 이성재(사도요한) 신부님이 사목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