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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순례 [ 초남이성지. 개갑장터성지.되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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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스텔라의 성지순례
구독자: 905  조회수: 956회  유튜브등록일: 2024-01-13
초남이 성지 (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호남 고속도로와 전주, 익산이 갈라지는 곳에
지금의 형정 구역으로는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초남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이곳이 바로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 탄생한 곳이자
동정 부부로 유명한 류중철(요한)과 이순이(누갈다)가 살다가 체포된 곳이다.

류항검은 윤지충과는 이종 사촌간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직후에 입교하여 전주 일대에
널리 신앙을 전함으로써 '호남의 사도'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는 초기 가성직제(假聖職制) 에서 신부로 활동 하였고,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교회일을
열심히 뒷받침해 주었다.


1795년에 류항검은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다 성사를 받고 교리를 배웠는데,
이때 장남 류중철이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부친에게 허락을 받고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 무렵 서울에서도 한 유명한 신자 집안의 딸이 동정을 맹세하고 있었다. 초기의 신자 이윤하(마태오)의 딸인 이순이(누갈다)가 그녀였다. 이러한 사실은 곧 주문모 신부의 귀에 들어갔고, 신부의 주선으로 1797년에는 초남리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류 요한과 이 누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동정 서원을 하면서 혼례를 올린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 부부였다.

1801년 신유박해로 유항검 일가가 모두 순교하자 유항검의 생가는 ‘파가저택’(破家瀦宅)형을
받아 저수지로 변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들 순교자 중에서 유항검과 그의 아들 유중철과 유문석, 며느리 이순이, 조카 유중성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초남이 성지가 개발된 것은 1985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1987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유항검 생가터인 ‘파가저택’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주교구는 이우집의 문초 기록과 지역 토착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파가저택지와 유항검 교리당터, 가매장터를 확인하여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여 1987년 성지 축복에 이어 2000년 생가터를 새단장하고, 2002년 한옥 형태의 교리당과 ‘정지샴’(샘물)을 복원했으며, 2005년 주문모 신부 미사 봉헌 기념경당을
일자형 한옥 형태로 건립했다. 2006년에는 파가저택지 옆에 동정부부가 4년간 살았던 행랑채를 복원하여 현재 성체조배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갑 장터 순교 성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에 위치한 개갑 장터는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고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고창군은 2004년 6월 개갑장터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또한 개갑 장터는 인근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여겸 마티아(崔汝謙, 1763-1801년)의 순교 터이기도 하다. 그는 일찍이 복자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또 혼인한 뒤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李存昌, 1759-1801년)를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우고 아주 열심인 신자가 되었다. 이후 고향 무장으로 돌아온 최 마티아는 충실히 교리를 실천하고 자신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이웃에게 전파하는데 힘써 흥덕 · 고창 · 영광 · 함평 등지에서 28명을 입교시켰다.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최 마티아는 일단 한산의 처가로 피신하였다. 이때 무장에서는 그가 입교시킨 신자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으며, 그들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최 마티아는 4월 13일 한산에서 체포되어 일단 그곳에서 문초를 받고, 감사의 명에 따라 무장으로 이송되었다.

[되재 성지 ]
되재 본당은 1891년 한수 이남의 첫 본당으로
설립된 유서 깊은 교우촌 본당으로 1894년 성당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을 완공했습니다.
1942년 되재 본당 공소였던 수청이 본당이 되면서
오히려 수청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습니다. 1954년 임시로 공소건물을 지었으나 1958년 본당 소재지가 수청에서 다시 고산으로 옮겨가면서 되재 성당은 고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습니다.현 고산 성당은 본당 봉헌 100주년을 기념해 1994년 한옥과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건물로 장방형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건립되었습니다. 되재 성당 또한 2004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면서 전주교구와 완주군의 복원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4일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되재 성당 뒷산에는 본당이 설립되기 전 고산 지역에서 사목하다 열병으로 선종한 조스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의 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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