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바흐 #bach
이 곡은 바흐가 생애 말년에 완성한 B단조 미사곡(Mass in B minor) 중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Agnus Dei (아뉴스 데이: 하느님의 어린양) 아리아입니다. 바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곡한 이 유일한 미사곡은 단순한 하나의 음악 작품의 의미를 넘어 서양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신앙, 인간의 감정, 음악적 지성, 미학적 완성도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서 특히 Agnus Dei 아리아는 이 미사곡의 백미로 꼽힙니다.
바흐는 이 미사곡을 단기간에 작곡한 것이 아니라, 20-30년에 걸쳐 다양한 시기와 상황에서 작곡한 곡을 모아 마지막에 하나의 완전체 미사곡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치 자신의 소명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선 한 명의 인간이 바치는 마지막 신앙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바흐가 가톨릭 미사곡을 작곡한 것도 교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대한 표현입니다.
또한 바흐의 B단조 미사곡에는 칸타타, 푸가, 모테트, 콘체르토 등 바로크 시대에 사용되던 거의 모든 음악적 형식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Agnus Dei 아리아의 특징은 알토 독창과 현악 반주에 있습니다. 잔잔한 현악 반주 위에 흐르는 아름다우면서도 구슬픈 알토의 노래 선율은 마치 하늘을 향해 호소하는 한 인간의 간절한 탄식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노래와 연주가 서로 대화하듯 혹은 연리지처럼 주 선율이 서로 교차 반복되며 점점 깊어지는 바흐 특유의 대위법적 음악 기법은, 이 아리아를 듣는 이들의 마음 속에 잔잔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이 아리아는 기본적으로 B단조가 주는 슬픈 감정이 깔려있지만 감정을 해소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형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듣는 이가 끝까지 선율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마침내 깊은 침묵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줍니다. 이것은 성체를 모시기 직전, 내면의 정화-회개-자비와 평화의 요청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미사곡의 마지막 파트 Agnus Dei의 본질과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Agnus Dei 아리아 선율이 아름답지만 뭔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바흐가 숨겨둔 한가지 음악적 장치 때문입니다. 이 아리아는 B단조 미사곡의 일부이지만 사실 G단조의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 서정적인 멜로디가 G음에 자주 머물고 화성 진행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이 곡의 멜로디는 극도로 섬세하고 뭔가 공중에 구슬피 떠돌아 다니는 듯한 감정선 위에 있는데, 알고보면 바흐가 B단조와 G단조 조성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게 함으로써 그렇게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바흐는 이런 이중적인 조성 느낌을 통해 탄식의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미사곡의 분위기와 영적인 깊이를 마지막에 와서 또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켜버렸습니다.
이 음원에 나오는 성악가는 특히 바흐의 곡을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독일의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이고, 이 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는 마찬가지로 바로크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벨기에의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Collegium Vocale Gent)입니다.
만약 더 느리고 더 엄숙하고 더 애절한 느낌의 버전을 듣고 싶으시면, 독일의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가 노래하고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버전 (아래 링크 클릭)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