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로고
스크롤 상단으로 올리기

열세명의 사제가 함께한 천주교 용산성당 새사제 첫미사 [강론 염수의 요셉신부님 (26년2월8일]

  • 미분류
  • 강론
  • 교리/성경
  • 신앙일기
  • 성가
  • 홍보
  • 교양
  • 미사/전례
  • 행사
  • 주일학교 교리
  • 기도
  • 생명/환경
  • 성소
채널썸네일 스텔라의 성지순례
구독자: 3650  조회수: 1659회  유튜브등록일: 2026-02-09
2026년2월6일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을 받으신 이충서 (스테파노) 신부님 천주교 용산성당 첫 미사 봉헌
강론은 아버지 신부님이신 염수의(요셉) 신부님 이셨습니다
13명의 신부님들과의 합동 주례가 감동이였습니다

[ 염수의 (요셉) 신부님 강론 ]

오늘은 매우 경사로운 날입니다
이충서 스테파노 신부님이
사제로서 첫 발을 내 딛는날입니다
은총의 날입니다, 기쁜날입니다
스테파노 신부님은 제 아들 신부로서 마지막 입니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사제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아니면 성인 신부 되라고 이야기할까?
기도하는 신부가 되라고 할까?
이 생각 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스테파노 부재님 만나 life is story 를써서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스테파노 신부님께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제가 되었는지를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님은 신앙이 깊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으로서 믿음을 전수 받았고
또 복사가 되어서 신부님들과 친근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 결과 동성 고등학교 다니면서
예비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그토록 바라고 희망했던
대신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고속도로와 같은 앞날을 기대하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고난과 시련에 의미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해서 신학교에 온 것인가?
아니면 떠밀려온 것일까?
부모의 바람대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닐까?
혹시 세상이 무서워 이것으로 피신하는 것은 아닐까?
후회와 의문이 그의 마음 후벼 팠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별로겠지요 ?
그 에게 새로운 생활이 열렸습니다.
군 생활과 플락디쿰(Practicum)현장 실습 시간이었습니다.

군 생활이란 새 경험의 시간이었고
제대후 현장 실습 시간인 플락디쿰(Practicum)은
그에게 세상을 향하는 눈을 뜨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성장하였습니다.
그는사제 생활이 편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생활이라는 깊은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자 학교 성적도 상승 커브를 그렸죠.
그래서 학사학위 논문도 잘 썼고
제가 또 칭찬도 많이 해줬죠.
그것을 바탕으로 이번에 석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아주 잘 썼습니다.

보통 석사학위 논문은
이것저것 남의 이야기 짜집기 해서 많이 쓰는데
자기 언어로 나는 이 논문에서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정확히는 써 가지고 칭찬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물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주위 시선에 밀려온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대단히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음에 대답이 없으며 그 물음은 계속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 물음은 내 존재 밑에서 계속 꾸물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어느 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던 중
십자가를 지고가다가 기력이없어 넘어지신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피투성이된 그분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분의 상처가 분명 나로 말미암아가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은 그분은
저에게 원망의 눈길을 주기보다는
저를 보고 환히 웃어주었습니다.
마치 달려온 저를 보고
“충서야 왔느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제가 그분에게 달려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하셨습니다.
그 얼굴을 뵙는 순간 하여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에 새 삶을 온전히 당신께로
방향을 짓는 결정적인 체험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새 삶의 순간 순간마다 개입하여
오늘 이 자리로 이끌어 주셨다는 확신을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가져온 근본적인
물음에 답변이 되어 주셨습니다.

과거에는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아서,
신학교로 도망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의 손길로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체험은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닮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나를 불살랐다는 이 체험에
앞으로 사제생활에 바탕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부족한 나,
그분에게 큰 상처를 준 나를 감싸 주었습니다.
그분은 부족한 나를 안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역사 안에서 무수히 반복되었습니다.
사제들은 그 비슷한 체험을 각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부제 때 비슷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 략

“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
요한복음3장 30절 이 말씀을 서품성구로 삼았습니다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면 내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 의지보다 주님의 섭리에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산다면 정말 성인 신부가 되겠죠. 실제로 사제 생활을 하다 보면은 몇년은 서품때에 가졌던 그 마음을 지켜나가다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모습이 될 것입니다.
입으로는 그분은 내 삶 속에서 갈수록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내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매일 자기 전에 하루를 성찰할 때 내가 오늘 살면서 너무 커진 시간이 있는가를 살펴보면은 내 자신이 퇴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강론을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체험. 앞으로는 내 사제생활에 기둥이 되는 모든 것이 있는 보물창고로 그것을 언제나 현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서품성구. 예수님과의 만남이 신부님 생활 속에서 굳지 않은길이 “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되고 그분은 갈수록 커지셔야한다.” 이 서품성구란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보기

0 / 500
강론 영상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