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마태 13,40)
세상을 살다보면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잘못을 했어도 사과할 줄을 모릅니다. 아주 뻔뻔하며 자기 밖에 모릅니다. 누군가 마음에 안들기 시작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흔히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험담입니다. 이들은 절대로 "자기 성찰"를 하지 못합니다. 성찰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느님의 생명을 얻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어야 했는지를 전혀 바라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고해소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신부님, 지은 죄가 없는데... 판공성사라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죄들은 귀신같이 알아내고 아주 열정적으로 파해치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상응하는 처벌 이상의 것을 요구하며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또 이들은 "밀"과 아주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기에 "밀"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어도 그분의 말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밀처럼 보여지는 것을 이들은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가라지들이 같고 있는 모든 모습들을 저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처럼 "좋은 씨", 곧 "하느님의 자녀들" (마태 13,38)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의미는 부모님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하느님과 그대로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 생명이 부모님에게 시작된 것처럼, 그래서 부모님과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또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마다 부모님께 의지하고 위로받았던 것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내 삶의 방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용서를 청했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하느님과 똑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과 애정이 없어지기 시작할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뒤흔들리고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하느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들 마음을 장악하기 시작할 때, 우리들의 삶은 가라지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마태 13,40) 하느님께서는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세상 종말" 때까지 미뤄 두셨습니다. 세상 종말 때까지 미뤄 두셨다는 것은 그때까지 당신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 때까지, 심판 때까지 "가라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쁨과 생명을 얻어 본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이 살아왔다면, 종말의 그 순간에도 또한 심판의 그 순간에도 그동안 하느님과 아무 상관 없이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이 하느님을 거부하게 만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