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토마스) 신부 :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 신학생이면서 2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년 3월 1일~1861년 6월 15일)는
15살이었던 1836년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중국 요동성당에서의 7개월 사목 활동 후
1861년 6월 15일 만 4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11년 6개월 동안
조선의 복음화에 일생을 바친 백색 순교자 또는 땀의 증거자이다.
최양업 신부는
1853념 여름 조선대목구 신학교 지도를 맡은 이후
3년 동안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요 본당으로 삼아 전국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해 왔다.
사목 순방이 끝나는 9~10월에는
배티 사제관에 거쳐하면서 저술에 몰두하여
글을 잘 알지 못하는 교우들을 위해
어려 편의 "천주가사"를 짓고,
최초의 한글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天主歌辭)’와
성교공과(聖敎功課)를 번역한 한글 교리서 ‘성교요리문답’을 지었다.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뜻이다 .
충북 진천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넘어가는 이곳고개 주변에
돌 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고 있는 성당이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1861년 6월15일
만 40세 나이로 선종하신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1년 4월 15일 기공식을 하였고
1년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고딕 양식 기념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대성전에 들어 서면 제일먼저 최양업 신부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커다란 스테인 그라스가 눈에 띤다
그리고 대성당 안의 양쪽 스텐드그라스는
최양업 신부 탄생부터 선종까지의 생애를 말해주고 있다
대성전을나와 윗성당이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배티성지 중턱에 자리한
팔각지붕의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
(1841년3월1일 탄생)을 만나볼수 있다
탄생 성당은 베티성지가 개발되고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이곳 지하 경당 좌측에는 최양업 신부 초상화와
아버지 최경환 프란티스코 유해 ,
김대건 신부 유해,
오반지 바오로유해가 모셔져 있고
우측애는 성체조배실이다.
선종150주년성당에서 탄생175주년성당으로 올라가는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최양업신부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의 외관은
최초의 조선대목구 신학생인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세명의 신학생이
함께 유학했던 마카오의 조선대목구신학교(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건물과
그 인근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 앞에 놓여있는 양업교는
마카오와 조선을 이어주는 배를 상징하며,
그 아래를 흐르는 양백천 상류는 서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 최양업 박물관은 2012년 10월 10일에는 기공식을 가졌고,
2년후 4월 11일 순례자들이 누구나 '보고 느끼고 기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체험관으로서의 박물관 축복식을 가졌다.
배티성지 성모상들은 거의 모두가
감곡 매괴성당의 '칠고의 성모상'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는 매괴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재직하셨던
김웅렬 신부님께서 2010년8월~2017년8월까지
이곳 배티성지에서 사목 하시던 동안에 추진된 것입니다.
지금은 이성재(사도요한) 신부님이 사목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