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성당#월평성당#김영제#천주교박해#김아가다#공소순례#최양업신부#김베드로 양반 가문의 김영제(베드로)는 9개월이나 갇혀서 배교를 강요당하고 종지뼈가 으스러져 떨어나가는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혹독한 장독이 전신으로 퍼지고 상처부위에는 항시 피고름이 흘러 한겨울에도 바지를 걷고 진물을 받아내야 하는 고통 속에 살다가 결국 1875년 숨을 거두었다. 살티 공소(1868~)는 간월공소, 대재공소가 파괴되면서 설립된 공소로서 원래 이곳은 첩첩산중의 신자촌이었다.
이 곳은 옛날부터 전쟁을 위해 화살을 만들던 곳으로, 호랑이 등의 맹수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살기 어려웠던 곳이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간월과 언양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숨어 지내기에 좋다는 이유로 이곳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다)로 피난 와서 살기 시작하였다.
김 영제 베드로, 남의선 안드레아, 이루수, 최일문 베드로, 1884년 페낭으로 유학 가 신부가 된 김문옥(1873~1941, 요셉) 신부의 조부 김경두 가정 등이 다시 이곳으로 이주해 왔으며, 그 외에 이종창(1934~1961, 바르톨로메오) 신부 선대 및 정씨, 곽씨 가정들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살기 시작했다.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관헌들이 교우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와서 경주로 빠져나감으로 이곳의 교우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살아남아서 ‘살 수 있는 터’라고 하여 살티 혹은 살틔라 불러오고 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 후 안살티에 살던 신자들이 현재의 공소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여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이곳은 증거자 김영제가 형의 휴유증으로 선종한 곳이며, 현재의 공소건물은 1982년 교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박해시절에는 전세대가 신자였던 이곳은 많은 신자들이 농촌을 버리고 이사 갔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의 후손들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살티는 최재선(요한) 주교를 비롯하여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의 고장이기도 하다. 살티마을 입구 길 건너에 초대 부산교구장 최재선(요한) 주교의 가족묘지가 있다.The tomb of Kim Young-jae (1827-1876) who was martyred during the persecution of the Catholic Church, and the oldest public office in Busan, established in 1868, are sacred places in the Catholic Busan parish. A sanctuary for the martyrdom (Kim Young-jae's grave) is located 500 meters away from Sartigong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