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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유채널73] 가난함을 주소서 (노래와 우쿨렐레 연주) 발자취를 따라서 6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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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4020  조회수: 796회  유튜브등록일: 2020-12-29
2020 년 12월29일 성탄 팔일축제 제5일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영속성을 보여주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루카 2,22)
"주님의 율법에 ...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루카 2,23)
"주님의 율법에서 ... 명령한 대로"(루카 2,24)
아기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율법에 기록된 것을 이행하기 위함이지요. 율법은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삶의 근간이고 정체성이며 이정표입니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다."(루카 2,27)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시메온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문자에 매이지 않고 영에 활짝 열린 그가 비로소 구원자 아기를 만나고, 알아보는 영광을 얻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32)
메시아를 기다리며 어둠을 견뎌온 이스라엘에 놀라운 보상이 주어집니다. 빛이신 분이 길었던 어둠을 가르며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지요. 그렇다고 구약 시대까지를 어둠이라, 신약 시대부터 빛이라 칼로 베듯 단절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빛은 성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미리 준비하신 구원의 절정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옛 계명과 새 계명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1요한 2,3)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지키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은 별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이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준비시키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친히 보여 주신 율법의 완성을 살되, 문자 자체에 매여 있지 않을 뿐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완성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무르익어오던 율법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통해 정점에 이른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사랑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심정이 생생히 드러난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1요한 2,7-8)
요한 서간의 저자는 옛 계명과 새 계명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품으신 그 사랑이기에 연속성 안에 있으면서, 율법을 전해 준 모세와 달리 예수님은 당신께서 가르치신 계명대로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새로운 사랑이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1요한 2,9)
구원자께서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그분과 제자들에게 살의까지 품습니다. 자신들이 수호해 온 율법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 계명을 대립각에 놓고 배척함으로써 눈을 감아버린 것이지요. 이스라엘 역사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흘러오던 율법의 강물이 비로소 출구를 만나 온 세상을 향해 힘차게 뿜어나오는 완성의 때를 외면한 채 그들은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5)
복음 속 시메온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 앞에서 하느님 백성은 옥석이 가려졌지요. 사랑을 사랑으로 보는 이와 위험으로 간주하는 이로 말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우리의 신앙과 사랑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지금 이 세상에도 사랑을 두고 율법주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재단하는 눈들이 없지 않습니다. 사랑할 마음은 없으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불편해, "젊은 사람이 왜? 멀쩡해 보이는데 왜? 나라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자신의 사랑없음을 율법으로 합리화하고, 행정에 떠넘깁니다. 사랑없음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사랑을 방해하고 차단해서 결국 사랑의 맥을 끊으려는 어둠의 힘이지요. 효율적이고 영리해 보이나 하느님의 온도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이 하느님께서 명하신 그 사랑의 완성임을 받아들이는 이는 자신이 받은 그 사랑이 또 다른 완성으로 이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길을 터주지요.그는 언제라도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면 놓치지 않으려 영혼을 활짝 열고 이웃과 세상을 살핍니다. 마치 감독의 Q 사인을 기다리며 Stand by 상태에서 대기하는 연기자처럼,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랑의 계명이 하나인 것처럼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사랑의 법이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통해 완성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되 문자에 매이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자유로이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성탄은 하느님 사랑의 축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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