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 흔한"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접하고 그리 놀라지 않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성령강림대축일 강론입니다.
Music: "Reminiscence," composed & performed by Min Sihu (민시후)
Instagram: https://instagram.com/min_sihu
Youtube: http://youtube.com/c/minsihu
Texas Rep. Crenshaw on George Floyd's death: 'There's a very clear injustice there': https://www.youtube.com/watch?v=ueHLsYQJu04
Atlanta Mayor scolds violent protestors: Not in the spirit of MLK:
https://www.youtube.com/watch?v=5sbBj_6QncQ
며칠 전에 조지 플로이드라는 사람이 살해되었습니다. 흑인이었고, 그를 살해한 사람은 백인 경찰이었습니다. 뉴스 보신 분들 많을 거에요. 미니아나폴리스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체포하는 과정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바닥에 눕혀놓고, 그 경찰이 무릎으로 그의 목을 눌렀습니다. 십분동안.
이 조지라는 사람이 왜 체포되었을까? 뭔가 잘못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 사람이 편의점에서 위조지폐 20불을 사용했답니다.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지를 체포했고요. 위조지폐인지 모르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죠. 알고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단돈 20불입니다. 경찰의 이런 가혹행위를 조금도 정당화할 수 없죠. 조지는 흑인이기 때문에 죽은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 때문에 슬픔에 잠겼습니다. 뉴스 앵커도 보도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분노를 삭히지 못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하고 있고요. LA에서는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하고, 미니아나폴리스에서는 경찰서 하나가 불에 탔습니다. 아직 뉴스를 안보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세요. 조지 플로이드 사건. 다행히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서 이 살인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지금 SNS에는 그 경찰이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채, 무릎으로 조지를 누르는 사진이 넘쳐납니다. 너무나 끔찍한 사진입니다. 그 경찰의 얼굴은 무슨 장난하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곁에는 다른 세명의 경찰들이 있는데, 그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지는 숨막힌다고 소리지르고 있고.
그런데 문제는, 그 사진 속 모습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다는 것입니다. 백인 경찰이 흑인위에 올라 타 있는 모습. 저도 처음 이 사건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는, 아, 또 백인 경찰이 흑인을 죽였구나, 하고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시위들도 곧 잠잠해지겠지.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을거고, 부조리는 그대로 있을 거고.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한 텍사스 국회의원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너무 명백한 죄악이다. 그 경찰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고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폭동도 문제가 크다. 죄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 국회의원의 말은 제가 별 생각없이 갖고 있던 그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 많이 일어나는 것이고, 미래에도 또 일어날 것이다. 저 범죄자들 개개인이 문제이지. 지금 이 미국사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사진, 백인경찰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흑인의 목을 누르고 있는 그 사진, 그 사진이 보여주는 실상을, 끔찍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 등에 올라탄 그 이미지를, 찢어지는 아픔 없이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폭동은 나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분노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 더 나쁩니다. 이것은 백인과 흑인 사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만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강자가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는 가정 폭력의 형태로 한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선생과 학생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신부와 신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어느새 그 누군가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면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휘파람을 부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이 평화는 폭동이 없는 평화가 아닙니다. 변화의 바람이 없는 잠잠한 상태가 아닙니다. 백인 경찰이 흑인 등에 올라탄 이미지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그런 멍청한 상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의 죽음을 무릅쓰고 죽어 부활하여 얻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이런 뜨거운 삶을 살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진정한 평화에 도달하도록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 내 무릎에 깔려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조지 플로이드는 엄마를 부르면서 죽어갔습니다.
지금, 그렇게 내 밑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가 누구입니까?
지금 그렇게 나에게 깔려 죽어가고 있는 이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