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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세월호(2014.4.19. 부활성야미사 강론)

조회수 595회     2021-04-16 12:13:55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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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가톨릭대학교 SUWONCATHOLIC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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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부활 성야 미사도...
성야 미사 강론을 공유하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가족들과 아픔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활 대축일 성야미사
2014년 4월 19일 신학교

이번 부활은 그 어느 때보다 다른 분위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진도 해상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어수선합니다. 부활을 지내는 우리 마음이 이토록 무거운 이유는, 이번 사고로 숨을 거둔 이들과 배 안에 갇힌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맞은 비극과 슬픔에 우리 또한 동참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 밖에는 그들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우리가 지내는 파스카 사건의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기도록 인도해주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시는 걸까?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이런 질문과 함께 우리는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신 주님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사고로 인해 희생된 이들 뿐 아니라 이 사고에 참담한 마음을 갖는 우리가 모두 신비로운 방식으로 파스카 사건, 구원의 신비에 동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배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예루살렘 부인들과 닮았습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한 사고는 그들이 저지른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죄와 그것의 잔혹함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듯, 이번 사건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와 우리 각자 안에 숨겨져 있는 불의와 잔악함, 나태함과 책임회피,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업적주의와 적당주의 등을 밝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은 우리 대신에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짐을 대신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그들에게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믿을 수 없는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들과 그들 가족의 아픔에 동참하여 하나가 되라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무장하라고 재촉합니다. 이번 사건은 ‘그들’에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고난이 끝이 아니듯, 우리의 신앙 여정 또한 죽음이 종착역은 아닙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필리 3,10-11).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그들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에 참여한 그들이 이미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인간의 연약한 육신을 취하신 주님께서 친히 부활하시어 그들 안에 함께 계시며 그들을 부활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부활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5-8).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희망에 눈을 뜨도록 인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들이, 그들 가족과 우리가 모두 이 시련을 잘 견디어 내어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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