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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하까 1,1-8; 루카 9,7-9
강론원고(전문)
성전 중심의 종교, 부활 신앙의 교회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왔을 당시에, 유다 지방은 폐허였습니다. 그리하여 유배에서 돌아온 하까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예언(하까 1,4)을 전해 받아서,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가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이 당시 형편이 어려워서 솔로몬 시절에 지어진 성전보다는 작게 지었기에 후에 헤로데 임금이 번듯하게 증축하여 예수님 시절에 이르렀습니다.
그마저도 사두가이파 출신 대사제들이 제사독점권을 내세워 백성들을 착취하고 하느님과 소통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19). 이 성전정화사건에 담긴 뜻을 사도 바오로는 제대로 알아들었습니다. 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요 이를 구성하는 개별 신자들의 삶이었으며 또한 그 삶을 이루는 신자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1코린 6,15.19-20). 몸이 신자들의 공동체라면 머리는 그리스도이셨는데, 이 머리와 몸이 교회가 되어 새로운 무형의 성전이 된 것이고 이 무형의 성전인 교회의 생명은 부활 신앙이었습니다.
조선천주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이른바 가성직제도가 운영되던 5년 간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더구나 세례 이후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자, 첫 세례자들인 천진암 강학회 출신 선비 신자들이 1786년의 대책회의에서 이승훈에게 요청하여 조직했습니다. 그 때는 천주교회의 중추였던 이벽이 문중박해를 받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직후였으므로, 이승훈이 이벽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교회의 책임자로 하되 주교에는 권일신, 신부는 열 명이 지명되었는데 이승훈, 이존창, 유항검, 최창현과 홍낙민, 최 야고보, 정약전과 정약용 등이었습니다(정약용, 조선복음전래사; 정민).
교황과 주교의 간섭도 없고 임금과 대신의 박해도 없었던 이 시기(1786~1790)에는, 입교자가 한양 선비들을 포함하여 천여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이 시기에 조선 천주교회는 가장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성전을 신자들 속에 지었던 것입니다(최석우). 평신도 사도직이 자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게 될 때 살아날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 역사 초창기의 자발성과 창의성에다가 부활 신앙까지 갖추면 민족 복음화의 과업을 감당할 만큼 교회를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강론 신부 소개
이기우신부-1988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
명동본당 보좌(1988-1991),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위원장(1991-2006), 해외연수(2006-2010), 신내동 본당(2010-2014) 주임, 중앙보훈병원 원목(2016) 등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 파견되어 거주사제로 지냄(2017~현재).
다음 사이트에 카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http://cafe.daum.net/coop-csti 운영 중.
'믿나이다', '행복하여라', '서로 사랑하여라' 등 가톨릭 교리 해설서, '세상의 빛'(가톨릭 사회교리 해설서), '예수는 누구인가'(마르코 복음의 주해와 묵상), '교회는 누구인가'(마태오 복음 주해 및 묵상), '복음화'(루카 복음 주해와 묵상) 등 복음서의 주해와 묵상서 출판.
현재 '영원한 생명의 파스카'(요한 복음 주해 및 묵상서) 집필 중.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졸업, 가톨릭 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조직신학 석사(교회론 전공), 박사과정 수료(사회교리 전공). 파리 가톨릭대학 신학 연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연구소
http://cafe.daum.net/coop-csti
가톨릭신문 기사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0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