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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 성지ㅣ신앙의 눈으로 보는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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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천주교 수원교구
구독자: 21000  조회수: 1116회  유튜브등록일: 2026-02-02
김대건 신부의 세례와 첫 사목의 자리 은이성지

| 기획 / 제작 | 수원교구 홍보국
| 촬영 / 편집 / 내레이션 | 성지순례하는 남자(이민호 베드로)
| 글(설명) | 이선규 대건 안드레아

주문모 신부님이 순교하신 1801년부터 1834년까지 33년동안 조선에는 신부님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제도 없는 조선땅에서 33년간이나 신앙을 지키고 살았다는 것은 교회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사실입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이나 천주교 교리 서적들을 필사하여 서로 나눠보며 신앙을 지키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톨릭 초기 선조들의 신앙을 보면서 순례자는 언제든 자유롭게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볼 수 있는 지금의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게됩니다.

조선에 신부가 없었던 암흑기를 지나 마침내 1836년 1월 프랑스 신부님인 모방신부님이 서울에 들어오셨다는 소식을 은이공소 사람들이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소회장이셨던 김재준(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은 가슴 뛰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 정하상바오로의 집으로 찾아가 은이마을 일대의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알리고 모방신부님을 초대하여 은이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세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청년 김대건도 모방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게됩니다. 김대건은 이때 나이 15세였습니다. 이 세례를 받게 되는 곳이 바로 은이성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모방신부님은 이곳에서 3일 동안 머무시면서 은이공소 일대의 많은 신자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푸셨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모방신부님이 이곳으로 오실 때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푸시는 것 이외에 마음속에 중요한 목적이 하나 더 있으셨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신학생을 선발하실 생각을 하시고 특별한 기도를 드리셨다고 합니다.“주님 이곳에서 세 번째 신학생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중에 많은 청년들 사이에서 청년 김대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청년이다 하셨고 김대건 또한 성령의 부르심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전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본명은 재복입니다. 대건(大建)이라는 이름은 관명으로 자신의 웅지 와 포부를 담아 스스로 대건이라 이름지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은 순교하신 종조부 김한현의 세례명인데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할아버지의 신앙을 존경하고 흡모하는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순간 할아버지의 신앙을 닮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인의 세례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세례를 받던 공소터에 세워진 기념관은 청년 김대건에게 임하신 성령의 부름심을 묵상하고 그 옛날 초기 가톨릭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생활과 신앙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있어 있습니다. 기념관을 돌아보며 성소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느님의 사람, 청년 김대건 신부님을 다시금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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