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토마스의 이 말은 모든 것이 검증되고 확인 되어야 하며, 눈으로 봐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재로 우리들은 무엇인가 보아야만 그리고 확인 되어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예전에 제 조카가 충청남도에서 개최한 수영 대회에 나가서 2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을 받자마자 조카는 저에게 기뻐서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큰 아빠! 저 도 대회에 나가서 수영 2등 했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너무 기뻐서 "요한아! (조카 세례명이 요한입니다) 너무 축하해! 큰 아빠가 요한이 때문에 너무 기쁘다. 내 조카 너무 자랑스러워!"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토마스처럼 "보아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저는 이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야, 상장 사진 찍어서 휴대폰으로 보내봐! 이 상장 위조한 거 아니야? 믿을 수 없어! 큰 아빠가 너 대회 나가는 거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다음에 대회 나갈 때 알려줘. 그때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너 수영 그렇게 잘는거 확인 되면 믿어 줄께."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검증하고 확인 되어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 하지만, 실재로 우리들의 삶 안에서 "믿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말", 누군가가 전해주는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닙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제 강론을 봐주세요 ^^: https://youtu.be/I63JXB3OaSk). 믿음은 "단순"합니다. 그 단순함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도 이 점에 대해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 10,17). 그리고 "불신", "불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할 때, 듣기를 중단했을 때 시작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20,29). 예수님의 이 말씀은 토마스에게 믿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그분을 보지 않고도 믿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희망과 위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자꾸만 하느님께 대한 의심이 솟아나고 있다면, 그 믿음이 다시 튼튼하게 잡게 도와줄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삶"입니다. 실재로 말씀을 듣지 않는 삶 안에서는 믿음이 절대로 자라날 수도 없고,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에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이미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주는 믿음의 끈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말씀" 앱만 잘 활용하셔도 여러분들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예수님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더욱 굳건해지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혹시나 "말씀을 선택하고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 행복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다시 예수님 말씀 한 구절을 선택하고 알람을 설정해 보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