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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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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 생명의 샘 *
구독자: 5110  조회수: 793회  유튜브등록일: 2020-10-21
"내가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평화의 반대인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입니다.
지금 우리 찾고 있는 '인간적인 평화'입니다.
돈과 건강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우리의 인간적인 바람들이 채워졌을 때 오는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평화가 아니라, '참 평화'를 주러오셨다는 '역설'(paradox)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12,4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불'은 '참 평화'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참 평화와 하느님의 나라라는 불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렇게 되려면,
예수님의 세례,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십자가'가 필요하고, 평화이신 주님을 부모와 자녀들보다 더 사랑하는 '아픔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에페3,17.19)

'참 평화'가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생활성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니
https://youtu.be/8pkFISwF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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