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9,22)
어제 우리가 기억한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고통을 하느님의 선물'로 바라보았습니다.
고통 그 자체만을 바라보거나, 고통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으면 고통은 결코 하느님의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50년 동안 오상의 고통을 겪으신 비오 신부님께서 고통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신 것은, 고통의 결과요 고통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영광인 부활을 믿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신원'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입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루카9,19)
예수님에 대한 신원이 군중이 생각하는 수준, 곧 가짜 예수님에 머물러 있는 한, 결코 고통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 앞에서 모두 넘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