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과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
발자취를 따라서
중국 성지 순례
[ 북경, 장가구, 서만자,적봉/마가자. 하얼빈.
장춘/소팔가자. 단동, 대련 ]
"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 순례자들은
적봉을 거쳐 마가자를 향하여 출발
적봉시에서 우리를 인솔할 가이드를 만난후 마가자 성당으로 이동
현양비 내용을 옮겨 봅니다
브뤼기에르 (소 바르톨로메오) 주교
(1792-1835)
초대 조선 교구장이요 프랑스 선교사 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1815년 사제품을 받고 34세 때
동양 선교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829년 태국에서 주교로 서품 되셨습니다.
1831년 9월9일 조선교구 설정과 동시에 그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주교님은 고난의 여정 끝에
1834년 하북성 서 만자 (현 숭례) 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조선으로 가기 위해 1935년 10월19일 이곳 마가자(현 동산) 교우촌에 도착하였으나 ,
그 동안의 과로 때문에 갑자기 병을 얻어 이튿날 43세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이후 주교님의 유해는 1931년 발굴되어 조선으로 이장 되었습니다.
주교님은 이 처럼 사랑하는 양떼들이 기다리는 조선으로 가기 위해 갖은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착한 목자요 고난의 선교사 였습니다.
이에 주교님의 신앙과 공덕을 기리고 본받고자 본래의 무덤 자리를 단장하고 정성을 모아 이곳에
현양비를 건립 하게 되었습니다 .
2005년 10월 20일
(주교님 선종 170주년)
천주교 서울 대교구 개포동 성당 교우
천주교 적봉교구 동산 천주당 교우
"브뤼기에르" 주교님 묘비는 마가자 성당 정문을 나와
왼쪽으로 성당을 감싸고 돌아가면 5분거리에 성직자 묘지가 있다 ,
묘지 주변의 벽돌담은 염수의 신부님께서 개포동 사목시절 만들어진것 이라고 합니다.
묘지석은 문화 혁명 때 파괴되어 누군기의 섬돌이 되어 짓밣혔던 것을 고인이 숨을 거둔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서 17년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먼길을 달려 왔건만,오늘 미사를 봉헌할수 없다고 합니다.
미사는 이곳 마가자 성당 신자와 함께 봉헌할 경우 가능한 일이나.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고 . 신자들을 동원할수 없으니...
公館 에서 나온 사람들이 않된다고 하네요.
오늘 음식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녀님과 신부님께서 특별히 식당에, 신경써 부탁한것 이라고 한다.
수녀님께서는 한국어를 제법 잘 하셨다 .
한국어를 인테넷으로 혼자 배우셨다고 하신다.
조린 공원
1906년에 조성한 하얼빈 최초의 공원으로,
초창기에는
하얼빈 공원(哈尔滨公园, 하얼빈 궁위안)이라고 불렀다.
1946년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 운동가
리자오린(李兆麟)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조린 공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조린공원은
겨울이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얼빈 빙등제가 개최된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 최후의 유언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國權)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을 세우고
업(業)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소팔가자 교우촌은
1796년 경부터 시작했고
1836년부터
파리 외방전교회사 사목을 담당했다
만주교초대교구장에 파리외방 전교회 베롤주교가
소팔가자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성당을 건립했다
소팔가자는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가 머물렀던 곳이다
1842년11월 최양업 신부가 먼저 도착했고
김대건 신부는 1843년 초에 합류했다
김대건,최양업 신부는
부제품(1944년12월) 을 받을때까지
이곳 소팔가자에서 신학공부를 했다
차쿠 성당은
2011년부터 청주교구 소속
이태종(요한) 신부 사목중하고 계셨으며
한국신자들의 성지 순례와
중국 신학생들의 피정, 저술등을
통해 최양업신부 영성과 활동을 하고 계셨다
이곳 차쿠성당 에서 조선입국을 위해
많은 사제가 머룰렀던 곳이다
뤼순 감옥은
일본제국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안중근, 신채호, 박희광 등이 처형 당하거나,
수감생활을 했던 가슴 아픈 장소이며
우리 가 꼭 기억해야 할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