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팔레스타인 #가톨릭성경 #중동전쟁
판관기에 소개되는 12명 판관들 가운데 마지막 판관인 삼손 이야기입니다. 삼손 이야기와 함께 판관기의 전반부가 마무리됩니다. 삼손의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드라마틱합니다. 예를 들면 삼손 부모의 불임 가운데 생겨난 그의 잉태 소식(천사를 통한 수태고지), 하느님이 직접 명령하신 태중 나지르인, 사자를 찢어 죽일만큼 초인적인 힘, 그 힘의 원천으로 알려진 머리카락, 이방여인들과의 끊임없는 염문, 마지막 장렬한 죽음과 함께한 복수. 삼손의 이야기는 짜임새있고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삼손 인생의 특징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모호함입니다. 그의 삶의 많은 요소들이 경계선에 서 있어서 마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이방인의 땅과 이스라엘의 땅, 성숙과 미성숙, 정결과 부정..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 사이를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삼손의 삶은, 마치 모든 것이 모호했던 판관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어느 날 팀나땅 필리스티아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삼손은 그저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에 위배되는 이 부정한 혼인을 통해서 필리스티아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혼인식이 있기 전에 있었던 사건도 마찬가지로 모호합니다. 삼손은 죽은 사자의 사체 속에 있던 꿀을 먹는 부정한 일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 또한 다른 이유가 아닌 '그냥' 먹고 싶어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아담에게 그랬듯이 삼손은 부모에게도 그 꿀을 먹게하는 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역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벌'은 앞선 판관 드보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이 주셨지만 필리스티아에게 빼앗긴 땅인 ‘팀나’의 포도밭(이스라엘의 상징)에서 만난 포악한 사자(필리스티아)를 죽이고 나서 꿀(판관 드보라 상징)을 먹는 삼손의 이야기는, 어떤 측면에서는 필리스티아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라는 상징적인 메세지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의 모호함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주님의 영에 따라 사는 듯 하면서도 동시에 제 멋대로 사는 듯이 보이는 삼손의 모호함은, 율법(하느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저 '제 눈에 옳게 보이는대로 행했던 당시 판관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위기 딱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판관기는 이런 삼손을 그때 그때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입니다. 오히려 온갖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함 속에서도 주님의 영이 그런 삼손을 어떻게 쓰시는지 주목하라고 가리킵니다. 거룩하면 거룩한대로, 죄 가운데 있으면 또 그런대로, 하느님께서는 결국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이루어가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판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