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성지는 마을을 둘러싼 뒷산이 거북이 모습을 닮았다하여 구산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곳 구산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하여 아홉분의 진묘가 있고 구산출신의 순교자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신앙을 키운 곳입니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死生間 天主敎人 성 김성우 안토니오 (1794~1841)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경기도 광주 구산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1834년 중국에서 유방제 신부가 입국하자 찾아가서 세례를 받았고
1836년에는 구산의 자기 집에 작은 강당을 마련하고 모방신부를 모셔 미사를 드렸고 모방신부에게 우리말과 조선풍습을 가르쳤습니다.
공소회장으로 있으면서 타고난 성품과 부지런함으로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전교를 했습니다.
1839년 박해가 일어나자 배교자의 밀고로 형제들과 체포된 후 풀려났지만
1840년 다시 체포되었고 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독촉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신앙을 지켰으며
옥 중에서 죄인들에게 교리를 전하며 두명을 입교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1여년의 옥살이 후 1841년 4월 29일 47세의 나이에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 후 성인의 시신은 아들 김성희 순교자에 의해 구산성지 현 위치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