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예수님을 그리워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 말씀하신 것에 따라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는 살아계셨던 2천년 전의 예수님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곧 발현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님이든 성모님이든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원하시면 그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의 승천 때문입니다.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우리가 주님과 처음 이별을 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였습니다. 주님은 당신 곁을 지키지 못한 제자들과 강제로 이별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님을 미워했고 주님을 세상에서 지워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에 의해 힘 없는 백성의 묵인하에 이방인의 결정에 맡겨져 생명을 잃으셨습니다. 그렇게 힘 없는 착한 이의 허무한 죽음을 보여주며 십자가의 이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 모든 것을 뒤집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사셨고, 주님의 모든 가르침과 삶은 영원한 삶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우리의 미래가 되었고 우리 삶의 참된 길이 주님의 삶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로 우리에게 진리를 선포하신 후 당신의 결정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것은 당신 펼친 손의 강복이었습니다. 당신의 축복이 우리에게 머물게 하시고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의 빵으로 함께하시고 성령으로 인해 우리가 당신 안에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인생이고,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별은 주님 축복과 은총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이별의 제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하느님 계획에 올바르게 응답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우리는 스스로 어떤 것을 하기에 늘 부족하지만 하느님은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주님의 이별은 눈물의 이별이 아닌 사랑의 이별이시며 당신 복음의 완성과 같습니다. 그로부터 그 못난 제자들이 주님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당연한 듯 우리는 그저 그분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지금도 그러길 원하는 우리는 주님의 뜻을 새겨야 합니다. 주님이 펼친 두 손에서 강복이 우리에게 내린 이유는 그 축복을 간직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누어 주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모두를 축복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코 주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할 때만이 아니라 늘 하느님 안에 있으며, 은총은 이미 우리 손에 그리고 우리에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온통 주님 안에서 세상을 사는 중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하늘을 쳐다보며 누군가에게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모으는 이들은 고개를 돌려 세상 속에 주님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혹시 모릅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그 편이 훨씬 빠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