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의 첫 부분에서(1사무 1─7) 중심인물은 사무엘이다. 이 인물은 이상적인 신앙인으로 소개되는데, 때로는 성소와 관련지어지며 예언직의 사명을 받는다. 동시에 저자는 그에게서 당대의 참된 구원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1,27-28 참조). 이것은 사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사무엘의 선택을 강조하는 이유는 두 임금을 성별한 그가 진정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심부름꾼임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1─7장의 다른 요소들은 사무엘기 전체의 주요 관심사들을 고려해야 그 의미가 잘 드러난다. 일례로서 계약 궤에 얽힌 사건들이 매우 상세하게 다루어진 이유는 이 사건들이, 다윗이 세운 도성의 보호자로 삼은 거룩한 궤를 영광스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2,27-36에 나오는 “믿음직한 사제”에 대한 예고는 솔로몬 시대에 제정된 차독 가문의 사제직에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2,7에서 간결하게 표현된 높임과 낮춤이라는 반명제는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게 맞서는 사무엘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울과 그의 집안에 맞서는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렇게 사무엘에 관한 일화는 이어서 나오는 일화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6장을 구성하는 옛 전승들의 편집자는 “왕정 지지파”로 볼 수 있다. 7장에서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관심과 문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역사가가 판관기의 역사를 완성하려는 의도로 7장을 재편집한 것이다.
1사무8-12장
왕정의 기원을 다루는 1사무 8─12장도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도 다양한 기원을 가진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은 비록 손질을 거치기는 했지만 분명히 옛 전승들이다. 벤야민 지파의 설화에서 나와 각색된 것임에 틀림없는 암나귀 이야기(9,1─10,16), 미츠파에서 제비로 임금을 뽑은 전승(10,17-27), 사울을 적국 암몬을 물리친 영도력 있는 판관으로 그리는 11장의 이야기가 그 좋은 예들이다. 8장은 왕정의 제정과 함께 야기된 신학적 문제점을 곧바로 보여 준다. 비록 주님께서 임금을 세워 달라고 하는 백성의 청을 끝내는 승낙하시지만, 이 장은 그러한 백성의 간청을 단죄한다.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무엘이 동족들에게 경고한 이른바 “임금들의 권한”을 이스라엘 임금들의 악습을 미리 단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원전 이천 년대 말기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행해졌던” 임금들의 관행을 상기시킨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8장의 근간은 오랫동안 학계에서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옛 전승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8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연설은 사무엘기의 다른 연설들과 마찬가지로 신명기계 역사가의 손질을 거쳤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연설은 이야기를 늘리는 데 가장 적합한 문학 유형이다. 12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별사 역시 전형적인 신명기계 역사가의 작품이다. 이 모든 작품에서 사울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라는 사실만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될 뿐이다. 저자의 관심은 누가 첫 번째 임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느냐가 아니라 왕정 제도 자체에 있는 것 같다.
1사무13-15장
사울이 벌인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들은 하나의 편집 작품이다. 여기에서 사울 시대에 필리스티아인들과 치른 전쟁들에 관한 옛 전승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전승들에서 진짜 영웅은 다윗의 친구인 요나탄이다. 그리고 이 전승들은 대체적으로 사울에게 적대적인 경향을 보인다(1사무 13─14). 아말렉과의 전쟁 이야기가(1사무 15) 옛 전승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탓에 사울 왕가가 멸망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도입된 것으로, 문학적 손질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사울의 파멸은 그를 이어 곧 임금이 될 다윗의 이야기에 꼭 필요한 서막이다.
왕정에 관한 교훈
이야기 저자들의 정치적, 종교적 경향을 살펴보면 사무엘기의 구성에 관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사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들려주는 긴 이야기라기보다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왕정이다. 저자는 왕정 제도의 애매모호함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통치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문제는 왕정 제도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풀려 나갔다. 주님과 그분의 대리자인 사무엘이 결국 사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왕정을 먼저 요구하였던 백성이 즉각 단죄를 받은 것은 아마도 왕정이 인간적 원의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의 군주 제도는 민주적인 것도 전제적인 것도 아니라 오직 신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사울은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듯 백성이 ‘요구하였기’ 때문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무엘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놀라운 이야기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경건한 사람의 권위를 드높여 준다. 사무엘기는 사울의 파멸을 불러온 잘못들의 종교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임금이라 해도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무엘기는 예배의 대상과 관습과 인물에도 관심을 가진다. 만져서는 안 될 계약 궤와(2사무 6,7) 예루살렘의 제단에(2사무 24) 관한 일화는 그 좋은 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