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역 반미사가 신안동 흥한타운內 1구역장 구금연(안나)님 댁에서
이 프란치스카 수녀님을 비롯, 본당회장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은근(바오로) 주임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정성껏 차려진 다과와 음식을 담소로 나누며 반원들의
유대와 친교의 정을 두텁게 쌓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강론
-말없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주십시오.”(루카 22,42)
어느 본당 상임위원의 경험입니다. 그는 술을 잘 못했습니다. 하루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었는데 그날따라 상급자가 자꾸 술을 권하더랍니다. 한두 잔은 받았는데 너무 심해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빰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회사 중간 간부이고 그 자리에는 아랫사람도 있었는데 창피하고 분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사표를 결심하니까 마음이 몹시 씁쓸하고 서러웠습니다. 성당을 찾았습니다. 제대 위 십자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 같고 그렇게 억울해 하느냐? 나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수없이 매를 맞았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는 다음 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뺨을 때린 간부가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가 처리한 일에서 하필 그때 그 날 뭄ㄴ제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누군가 그를 변호해 주어야 하는데 적임자는 뺨을 맞은 그 상임위원 형제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를 옹호했다고 합니다. 일 처리가 끝난 뒤 그 간부는 예비교우가 되었고, 세례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작은 기적입니다.
성지 주일에는 수난복음을 읽습니다. 가장 긴 주일 복음입니다. 그러나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죄 없는 분이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우선은 군중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로마 군인과 구경 나왔던 이들도 예수님을 외면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마저 모욕합니다. 철저하게 극한 상황으로 몰린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변명없이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당신께 등을 돌린 이들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수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지가지를 들고 전례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 가지를 십자가 뒤에 걸어 둡니다. 고통 받고 죽으셨던 예수님 뒤에 걸어둡니다. 고통받고 죽으셨던 예수님 뒤에 ‘내가 들었던 가지’를 걸어둡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임금이 등장하면 나뭇가지로 환영합니다. 성지가지는 그 의미의 연속입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주님을 새 임금으로 환영하겠다는 뜻입니다.
성지가지를 걸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억울함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환영하는 것이 됩니다. 관계와 일 속에 숨어 있는 ‘내 십자가’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은총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합니다. 절제하고 인내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변명 없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불평과 불만은 나쁜 습관입니다. 나쁜 습관을 벗는 길은 좋은 습관을 지니는 것밖에 없습니다. 인내와 절제가 힘들어질 때 성지가지를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수난복음의 청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