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무골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15년 성 김종한(안드레아)의 옥바라지를 위해 그 부인과 아들이 가장 먼저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1827년 정해박해 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다.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이다. 1977년 제1차 사업을 완수, 기념비’를 세웠고 1984년 순교자 이선이(엘리자벳)의 묘를 이장하였으며,
대구본당의 첫 본당터를 복원하여 로베르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로베르신부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 죽림굴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의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공소로 이용했던 자연 석굴로
대나무로 덮여 있어서 ‘죽림굴(竹林窟)’이라고 불렀다.
가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언양에서 왕방재로 등산해 간월산 정상에서 배내 쪽으로 2㎞ 정도 내려가는 왕복
3시간걸리는 4.2km길과
또 하나는 언양에서 밀양으로 연결된 24번국도로 석남사를 지난 뒤,
이천[배내] 동네 입구에 이르기 전 좌측으로 닦여진 산길로,3.6㎞ 정도의 거리이다.
첩첩산중인 이곳 죽림굴에서
최양업 신부는 3개월간 은신하면서 미사를 집전하였으며 그의 스승에게 편지를 썼던곳이다
죽림굴은 1839년 기해박해로 충청도와 영남 각처에서 피난 온 천주교 신자들과 간월공소의
신자들이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공소(公所)로 조성한 곳으로 간월 교우촌에서 왕방재라는
고개를 넘어 왕래했던 천주교 박해 시기의 피난처이며 1840년부터 1868년까지
대제공소로 사용되었다.
동굴 입구는 아주 낮지만 올라가보면 입구보다 훨신 넓어 박해시대때
최양업 신부와 150여명의 교우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다
입구의 높이는 150㎝, 너비 700㎝이다. 현재 천주교 성지로 알려져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죽림골’이라는 표지석이 있으며,
1996년 1월 21일 세운 공소기념비 1개와 최근에 새로 세운 기념비 1기가 있다.
동굴 입구에는 굴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진목정 성지 ]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수의길 192
진목정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이 후 어의현(於義峴) 일대에 형성된 여러 교우촌 가운데 하나이며,1862년 10월에 성 다블뤼주교님이 20일정도 머무르면서 주변에서 온 300여명의 교우들에게 성사를 베풀셨다고 추정되는 (진목) 공소가 있는 곳이다.
최양업신부가 사목방문 한 교우촌 중 하나이며병인박해 시기에 울산 장대벌(울산 병영순교성지)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한세 분 복자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가 신앙을 지키며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범굴이 있는 곳이며, 순교하신 후 세 분의 유해가 합장되어 있었던 순교자묘소(가묘)가 있는 곳이다.
대구대교구는 경주 산내 본당에서 진목정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을 조성하고, 진목 공소와 순교자들의 묘지 인근에 개인과 가족 위한 피정의 집을 세우고, 세 순교자의 묘지 위에 순교자 기념성당을 건립하고자 2014년 5월말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3년의 공사 끝에 2017년 5월 진목정 순교자 기념성당과 하늘원(봉안당)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진목 공소에서 약 3.6km 떨어진 단석산(소태리 단수골)에는 세 순교자가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는 범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