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마태 23,27)
성경 강의가 있을 때 교황님 집무실에서 교황님과 찍은 사진을 교우들에게 종종 보여주며 저는 다음과 같이 자랑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부님이 있습니다. 교황님 집무실에 들어가서 교황님과 담소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교황님께서 직접 축복해 주신 묵주도 받고 교황님과 악수를 한 신부님과 그렇지 못한 신부님입니다." 그러면 제 강의를 들었던 교우들은 모두가 박장대소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한 신부님, 냉담자를 100명이나 회두한 신부님, 코로나 상황에 주일미사에 신자들이 97%나 오게 만든 신부님, 성경 강의 재미있게 하시는 신부님. 요즘 저에게 붙는 수식어들입니다. 교우들이 저를 알아보아 주고, "신부님, 저 신부님 팬이에요"라고 말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체 앞에 앉게 될 때 분명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 하신 일들 일 뿐, 저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사랑과 은총이 절실히 필요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제라서 하느님과 가깝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목적으로 해 놓은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제 자신이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 안에 담겨져 있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마태 23,28) 겉으로 비춰지는 것들, 자신의 지위,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존경, 이런 것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하느님 안에서 바라보고, 하느님 앞에 자비와 은총을 청하는 "한 명의 신앙인"이 되는 것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테살 3,9). 제2독서가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 또한 복음의 봉사자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로서의 권리, 사도라는 특별함, 그래서 예외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 자신을 꾸미고 있는 모든 권리들을 내려놓고 한 명의 신앙인과 똑같은 삶을 선택하는 것, 이런 자세를 바오로 사도는 모든 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모범" 또는 "본보기"라고 말합니다.
불행한 삶은 하느님과 단절된 삶,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삶, 하느님이 아니라 나를 꾸며주는 것들을 붙잡고 있는 삶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하루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성체 앞에 앉아 예수님의 행복 선언 (마태 5,3-12)을 곰곰히 묵상하며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