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포구 토정동890 .절두산 순교 성지를 순례 하겠습니다
6호선 합정역 7번출구에서 도보 5분 정도 소요되며
오전 9시30분 개관하여 오후 5시성전과 기념관은 문을 닫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미사는 10시와 3시 미사가 봉헌 되고 있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한강의 동북쪽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 제399호로 지정된곳이다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 옆에 있었던 언덕으로 개화기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곳이다.
한강으로 돌출한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한 데서 잠두봉·용두봉·가을두 라고도 불렀다. 마포의 양화나루는 고려 때부터 한강의 중요 도선장으로 이용되었고, 조선 초기에는 양천을 지나 강화도로 가는 중요한 길이었으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1866년 천주교를 탄압한 병인박해로 병인양요가 발생하여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까지 진출했다가 퇴각하자, 이에 격노한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더럽혔던 땅을 서학인의 피로 씻음이 마땅하다" 고 하며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였다.
이때 수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누에고치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잠두봉은그 뒤로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잘린 목은 한강에 던져졌고, 시체가 산을 이루며 한강물이 핏빛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흥선대원군의 지시에 의해 잠두봉에서 많은 천주교도들이 참수당함에 따라 천주교의 순교성지가 되었다
1868년 남연군 무덤 도굴 사건, 1871년 미국 함대의 침입 사건은
대원군의 서슬 퍼런 박해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어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다.
ᄒᆞᆫ국 천주교회에서는 순교지인 이곳을 1956년에 매입했고, 1962년에는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1966년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에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하고 절두산 순교 성지로 조성하였으며, 1968년 이래로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와 안치하였다.
우뚝 솟은 벼랑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은 한국 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대변해 준다. 접시 모양의 지붕은 옛날 선비들이 머리에 썼던 갓을표현했으며, 지붕 위에서 구멍 있는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절두산 성당은 순례성당과 순교 성인 28위의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
한국 교회의 발자취인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념관에는 초대 교회 창설에 힘썼던 선구 실학자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의 유물과 순교자들의 유품, 순교자들이 옥고를 치를 때 쓰였던 형구(刑具)를 비롯해 갖가지 진귀한 순교 자료들이 소장돼있으며 .
최양업 신부 일대기 31점과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일대기 27점등귀중한 자료도 있다.
또한 기념관 광장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 다섯성인이 갈매못으로 끌려가던중 잠시 쉬었다는 오성 바위와 , 박순집의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십자가의길 ,사적비 등이 마련돼 있는 아주 중요한 성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