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당신 홀로 세상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만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의 복음 선포의 실제 내용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던 중 물끄러미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 배에서 그물을 손보고 있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보셨습니다. 제자가 될 이들은 주님의 목소리도 그분 주변에 모여든 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신 것은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이 그런 어부들을 부르신 사건을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밤새 허탕을 친 이들에게 물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게 하신 사건으로 기억하는 이 사건은 그 앞 뒤로 더 많은 사건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대표적인 제자인 베드로의 모습은 주님이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그리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세 번이나 모른척을 한 치욕적인 기억을 가진 베드로는 그럼에도 예수님의 첫째가는 제자입니다. 그런 그는 실제로도 가장 먼저 부르신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주님께 다가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주님이셨다지만 그렇다고 그가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 살갑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이 점점 더 다가오셔도 그분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이 기적의 결론을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기적이 일어난 후 보인 반응입니다. 그저 놀라움에 사로잡혀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진짜 모습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인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 곁에 스스로 머물 수 없는 존재라 고백했고, 아마도 그의 말은 사실일겁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 솔직해진 이의 고백이니 그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단점을 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그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부르십니다. 주님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고, 우리도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죄인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을 기억하는 일은 드뭅니다. 주님은 베드로 외에도 세관 앞에 앉아있던 세리를 부르기도 하십니다. 죄인도 제자가 되는 것은 상식 밖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현행범’을 붙잡아 당신의 제자로 만드시는 주님입니다. 이런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선한 의지와 노력은 죄인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분명 죄인을 당신의 제자로 만드셨고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 잘못의 기억을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이까지도 당신의 중요한 일들을 맡기셨습니다. 당신이 목수로 마지막까지 기억되셨듯 그렇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제자이자 어부였던 그들의 신분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세리였던 제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에게서 하느님의 사랑 앞에 우리가 모두 같은 처지임을 분명히 알아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겸손이 아닌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도 주님의 사랑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듣고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듣고 살아가는 순간부터 그런 모든 기억과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안고라도 그 길을 걸어야 할 은총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래서 우리의 사랑과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이 사랑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어도 부족해도 어리석어도 어떤 기준이어도 주님의 사랑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2:19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