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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2 13/ 행복은 사랑해서 하는 고생이다/ 연중 제6주일/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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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구독자: 35100  조회수: 12407회  유튜브등록일: 2022-02-12
월요일 복음 묵상 있겠습니다. 습관적으로 했네요. 대신 월요일 댓글 나눔은 쉴게요 ^^

2022년 다해 연중 제6주일 – 행복은 사랑해서 하는 고생이다

오늘은 루카 복음의 행복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세속-육신-마귀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속을 못 박는 것은 ‘가난’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이라 하십니다.
육신을 못 박는 방법은 절제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입니다.
또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은 세상에서 멸시받고 조롱받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으며 웃지 맙시다. 울게 될 날이 있습니다.

오늘 행복선언을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은 사랑 때문에 고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인간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이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가 내린 행복론의 결론입니다. 인생을 깨우친 이들은 누구나 같은 행복론을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행복하려고 열심히 사는데 행복하지 못합니다. 고생은 하는데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 왕자’를 한 번쯤은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B612라는 작은 별에 삽니다. 어린 왕자의 별에 꽃이 한 송이 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그 한 송이 꽃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의 행동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꽃은 아무리 노력해도 끊임없이 요구하는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결국,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자기 별에 뿌리내린 꽃을 떠난 것입니다.

첫 번째 도착한 별에는 위대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하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은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하기에 외로워짐을 모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두 번째 별에는 허풍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손뼉 쳐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손뼉을 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박수받을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세 번째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습니다. 술꾼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왜 마시냐고 물었더니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그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또 부끄러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별에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린 왕자가 와도 쳐다보지도 않고 계산기만 두드리고 장부 정리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중대한 일을 하는 가치 있고 정확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자신이 소유한 별들을 잘 관리해서 그것으로 다른 새로운 별들을 사는 것뿐, 그 별들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별은 매우 작았는데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 켜는 사람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의 명령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가로등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별이 1분에 한 바퀴씩 돌기 때문에 1분에 밤낮이 반복되어서 쉴 시간이 없습니다. 좀 쉬면서 하라는 어린 왕자의 말에 “내 평생에 하고 싶은 것은 자는 거야”라고 말하며 계속 불을 켰다 끄기를 반복합니다.

여섯 번째 별은 넓은 별인데 나이 든 지리학자가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별에 살고 싶은 어린 왕자는 그 별에 강과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지리학자는 자신의 별을 단 한 번도 탐험해 보지 않아 모른다고 합니다. 자신은 지리학자지 탐험가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별이 지구입니다. 지구란 그동안 만났던 왕과 지리학자, 사업가와 주정뱅이, 허풍쟁이와 가로등 켜는 단순노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씩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 설정은 지구에 사는 대부분 사람이 열심히 고생하며 사는데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을 위한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다가 이젠 왜 버는지도 모르고 그냥 출근하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고생은 하는데 덜 행복합니다.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이젠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는데 일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렇게 항상 고생하고 남는 건 없고 항상 공허하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행복은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아무리 고생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서 만난 귀한 친구 둘은 여우와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여우는 길들이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항상 4시쯤 오는 노력을 하면 여우는 3시부터 행복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자신을 위해 꾸준히 십자가를 져 달라는 뜻입니다. 어린 왕자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함을 알게 되면서 자기 별에 홀로 남은 장미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부족했기에 십자가가 힘들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어린 왕자가 요구하는 까탈스러운 그림을 그려줍니다. 바로 양입니다. 조종사는 사막에서 빠져나가기도 어려운데 어린 왕자가 귀찮았지만, 그와 친해지며 사막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어린 왕자를 위해 그림을 그려준 고생이 행복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외톨이로 살던 그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고생을 합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부모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를 사랑할 수 없듯이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고생이 헛것이 됩니다.

또 사랑만 외치는 이도 있습니다. 처음의 어린 왕자처럼 사랑은 없는데 자신만 고생한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그러니 고생하는 게 너무 싫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관계의 단절과 외로움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 죽음을 맞아야 하는 엄청난 가르침을 말했다가는 아이들이 다 도망가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위해 작은 십자가를 져야 함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떤 강의에서 이런 내용을 들었습니다. 사랑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은 십자가를 질 줄 아는 것부터 배우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어린아이에게 햄스터를 한 마리 선물해 줍니다. 그 햄스터는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정성을 다해 먹이를 주고 아프지 않도록 보살펴 주게하였습니다. 사랑하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햄스터의 평균수명은 2~3년입니다. 금방 죽습니다. 이때 아이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부모는 “또 햄스터 키울 거니?”라고 묻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절대 안 키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1~2년 지나면 또 키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아이가 햄스터를 대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이제 내가 열심히 돌봐주고 사랑으로 키워도 햄스터가 곧 죽을 것을 압니다. 그래도 행복하게 살게 해 줍니다.

햄스터를 처음 키울 때 햄스터를 참으로 사랑한 것일까요, 아니면 햄스터의 죽음, 곧 진정한 십자가를 받아들였을 때 햄스터를 사랑한 것일까요?
햄스터가 내 곁을 떠날 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사랑스러워 십자가를 져 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햄스터를 사랑하는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상대 때문에 오는 십자가의 죽음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가 내 곁을 떠나고 자녀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녀를 위해 나의 십자가를 질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가 죽지 않을 것처럼, 그래서 나중에 자녀를 통해 어떤 덕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결말로 끝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십자가를 버렸기 때문이고, 십자가를 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사랑이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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