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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몽골 지목구장 죠르지오 마렝고 주교 서품식 강론 :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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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Fr.Peter_Hong
구독자: 1620  조회수: 699회  유튜브등록일: 2020-08-13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죠르지오 마렝고 주교 서품식 강론
토리노, 2020년 8월 8일.
예레미야 1,4-9; 시편 33(34); 1콜로 1,24-29; 요한 21,15-19.

번역 : 한현택 아오스딩 신부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죠르지오 마렝고 주교 서품식 강론
토리노, 2020년 8월 8일.
예레미야 1,4-9; 시편 33(34); 1콜로 1,24-29; 요한 21,15-1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주교 서품식에 신앙 공동체로서 우리를 모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죠르지오 마렝고 주교님을 토리노와 콘솔라따 수도회에서 몽골과 보편 교회의 주교가 되게 부르심으로서 세상 모든 곳에 사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당신의 신실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어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죠르지오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교님이 도망가셨을까봐 걱정했습니다. 주교 직무의 무게 앞에서 누가 떨리지 않을 수 있겠으며 누가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백성은 주교에게 무엇을 기대합니까? 주교 직무와 주교의 삶에 대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부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함께, 살아계신 하느님의 집을 다스린다" (교의헌장 18항). "주교들은 공동체의 봉사 직무를 협조자인 신부들과 부제들과 함께 받아들여, 하느님의 대리로서 양 떼를 다스리는 그 목자들이 되고, 교리의 스승, 거룩한 예배의 사제, 통치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교의헌장 20항). "주교 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된다 ... 이를 대사제직, 거룩한 봉사 직무의 정점이라고 부른다" (교의헌장 21항). "주교단은 교도권과 사목 통치에서 사도단을 계승할 뿐 아니라 ...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다" (교의헌장 22항).

또 주교교령에서 공의회는 인간과 가정의 가치에 대해 가르칠 것 (12항), 교리교육에 매진할 것 (14항),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 (15항),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을 장려하며 소외된 이들, 쫓겨난 이들, 난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일 것 (18항)을 호소합니다.

저는 주교의 많은 고귀한 직무 가운데 몇 가지만 언급했을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주교님들께서 신실하고, 지치지 않고, 심지어 영웅적으로 주교직무를 수행하시는 것을 이미 보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교님들이 당신들에게 맡겨진 그러한 직무를 수행해가시는 것을 보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을까요? 한 사람의 주교의 마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한 사람의 주교의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자기에게 맡겨진 주교 직무를 수행하며 주교님은 자주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나에게 기대되는 것을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하면 정말로 주교직이라는 직무를 영광되게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이유로 우리에게 성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유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부르심에 한 명의 불쌍한 죄인이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은총과 하느님의 현존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진리가 오늘 들으신 독서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제 1독서에서 하느님의 확신에 차게 만드는 사랑은 겁많고 주저하는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변화시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의 한계와 두려움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한계와 두려움을 완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예언자로 존재할 능력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아주십니다. 이 순간으로부터, 예레미야는 자기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스스로의 보호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호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교에게 있어서 겸손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공간, 하느님의 힘이 활동할 공간을 마련합니다.

복음도 같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망가지고 창피당한 베드로를 당신 양 떼의 목자로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한 이유로 베드로를 단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베드로의 사랑을 보답으로 청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심으로서 베드로의 사랑을 정화하십니다. 최후의 만찬 때, 발을 씻어주신 후, 예수님께서는 당시로서는 제자들이 따라갈 수 없었던 당신이 가실 곳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소리놓여 말하였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요한 13,37). 베드로는 자기가 다른 제자들보다 짐짓 더 낫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한 주님의 확인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부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더 겸손해진,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데에 노심초사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과 예수님의 그분의 양 떼를 사랑하고 예수님과 그분의 양 떼에 봉사할 수 있게 된 베드로를 만나십니다. 주교는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는 증명해야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처럼, 주교는 불쌍한 죄인에게 당신의 양 떼에 대한 돌봄을 맡기시는 예수님의 정으로 가득한 사랑만을 자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2독서는 사도가 예수님의 양 떼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말해줍니다. 베드로처럼 바오로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자기가 전에 지녔던 적개심을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자비로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콜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는 자기 사명이 자기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의 직무는 자기 자신을 들어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의 충만함 안에서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가 형성되기까지 자기가 지녔던 힘을 모두 사용했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습니다. 바오로는 얼마나 큰 겸손과 헌신의 모범입니까! 주교는 신자들을 자기 모상과 자기와의 비슷함이 아닌, 바오로가 그렇게 노력했듯이 그리스도의 모상으로 형성해야 합니다. 주교는 양 떼의 주인 노릇을 하라고 불린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양 떼의 보호자가 되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 양 떼는 예수님의 양 떼입니다. "내 작은 양들을 쳐라. 내 양들을 쳐라."

죠르지오 주교님, 예레미야, 베드로, 바오로가 경험했던 내적 드라마는 당신께서 매일 경험하실 비가시적 내적 드라마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비가시적인 것들이 당신의 가시적인 활동적 주교직 수행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 비가시적인 것들이란 다음과 같은 뿌리를 갖는 것들입니다. 자기의 한계와 자기의 약함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 하느님의 말씀, 보호, 현존에 의지하는 것, 예수님의 양 떼를 보호자로서 돌보는 것.

양 떼가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앎, 사랑, 봉사에 있어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주교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직무는 얼마나 신비로운지요... 그리스도의 가시성이 우리의 비가시성을 살찌웁니다. 이 섬세한 예술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주교님도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시면서 이 선물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주교님의 주교 서품 성구 "주님을 바라보아라. 너희가 빛나리라 (시편 34,6)"라는 말씀처럼 그분의 빛을 비추시면서 말입니다. 우리 위로의 어머니 성모님처럼 주교님께서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때가 오더라도 예수님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위로가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게 하십시오. 주교님의 마음, 주교님의 눈, 주교님의 얼굴, 주교님의 미소, 주교님의 노래, 주교님이 글이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몽골의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 초원, 강, 언덕, 영원히 푸르른 하늘에 속삭이게 하십시오. 마음의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주교님의 대화, 모임, 조용한 저녁 시간에 몽골에 있는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속삭여주십시오. 성령께서 당신의 겸손한 속삭임을 주교님께서 닿지 못하시는 땅과 마음들에 전달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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