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동굴 성당의 십자가는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 묘를 발굴할 당시 순교 자의 머리 밭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돌 십자가가 형태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는 천주학의 신봉자 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교회 공동체 모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은 명래방
(현재 명동 성당주변) 주인입니다.
그 때문에 체포되어 겪게 된 모진 고문과 유배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계속되는 박해와 고초 때문에
유배지인 밀양 단장에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되고 이곳에 묻히게 됩니다.
당시에는 성물도 귀했지만 세상에 드러내놓고하느님과 예수님에게 대한 신앙을
증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안장 시킬 때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3개를 모아 모아 만든 십자가를 순교자의 머리 맡에 두어
그가 천주교 신자임을 표시하여 또한 또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평안한 안식을 누릴 것을 기도 드렸던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공동체 신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신앙 중심의 장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순교자의 머리 맡에 놓여 있던 돌 십자가의 형상을 통하여
주님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신 그분의 신앙과 순교자께서 죽기까지
믿음으로 섬기고 그리워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돌 십자가인
돌 십자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아래 김범우 묘 앞 표시석 글을 옮겨 봅니다
김범우는 1751년 서울에서 중인 역관 김의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세에 천년 현씨를 아내로 맞아 이듬해에 장남 인고를 낳았고
1773년 역과 증광시에 합격하여 한학 우어 별주부에 이르렀다.
그는 이승훈등 초기 교우들과 가갑게지냈고 1784년 가을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겨울 부터는 자신의 집이 교회가 되어 명례방 공동체가 생겨났다
1785년 봄 모임을 가지던 중
소위 을사추조 적발사건이일어났는데
양반들은 모두 풀려나고 그만 모진 고문끝에
단장으로 귀양를 가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의연히 신앙을 실천하며 전교 하다가 1787년 형벌의 여독으로귀천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묘소는 1984년 200주년 준비 과정에서 추적 되기 시작하여
1989년 후손들의 증언으로 파묘, 치아를 수습하고 감정을 거쳐 확인하였으며
2003년 묘지를 꾸며 이 돌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