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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정난주의 믿음 I 임문철 시몬 신부(제주교구 정난주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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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가톨릭스튜디오
구독자: 116000  조회수: 9116회  유튜브등록일: 2022-06-27
#정난주성당 #미사강론 #정난주마리아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미사
2022.6.26(주일) 오전 11시
임문철 시몬 신부(제주교구 정난주본당 주임)

천주교 제주교구 정난주성당 성전 건축기금 봉헌계좌
신협 131-021-708510 천주교 정난주성당
정난주성당 064-712-0057

정난주(丁蘭珠)는 1773년(영조 49)에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아버지는 정약현(丁若鉉)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다. 정약종(丁若鍾)·정약전(丁若銓)·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녀의 숙부이다. 남편은 황사영(黃嗣永)이고, 아들은 황경한(黃景漢)이 다.

정난주는 둘째작은아버지인 약전에게 서학(書學)을 배우고, 장성한 뒤에는 고모부인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고 천주교도가 되었다. 남편 황사영(黃嗣永)은 17세에 장원급제한 인물로서 정약종에게 학문을 배우면서 정난주와 결혼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정난주는 시어머니와 함께 그녀의 간난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경기도 남양주의 마재로 피신하였다. 황사영은 충청북도 제천(提川)의 배론 골짜기로 피신하여 천주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백서(帛書)를 써서 북경(北京)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였다. 이 일로 가산은 몰수되고 시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유배되고, 정난주는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다. 귀향길 중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하추자도 예초(禮草)리의 ‘황새바위’ 갈대밭에 아들을 내려두고 떠났다. 황경한은 마을에 살던 노인이 데려다 길렀으며, 현재 그 후손들이 남아 있다.

제주 대정현의 관비(官碑)가 된 정난주는 대정현 토호 김석구(金錫九)의 집에 위리안치되었는데, 김석구는 한때 별감으로 관속이었고, 현감과는 막역지우로 그의 자문역을 자임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여서 동헌 바로 뒤에 살았다. 이곳에서 정난주는 김석구의 아들 형제를 양자처럼 기르며 살면서, 또한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켰다. 1838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한양 할머니’가 죽었다며 슬퍼하였다고 전해진다.

제작_가톨릭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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