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부터는 정하상바오로후원회 소식지를 신부님들께서 직접 음성으로 제공해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청취 부탁 드립니다.
풍경담은 시월편지
1. 이 글을 쓰는 그제 오후에는 시월을 투두둑 건드리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나의 우산 아래, 하나 둘 셋, 이번 학기 처음으로 주일 외출을 다녀오는 신학생들의 걸음걸이가 활기찼습니다. 혹시나 몇몇은, 주님께 잘 다녀왔다며 인사드리고 나올까 하여 성당입구를 지켜봤지만...
여기 왕림 산자락 아래, 기숙사 C동 꼭대기에 살고 있는 저는 창밖바라기입니다. 지붕 스카이라인을 따라 계절과 시각마다 변화하는 산과 나무 하늘, 그 색감을 즐거이 바라보고는 합니다. 그중에 마음까지 스미며 미소 짓게 하는 풍경 속 형체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 위로 햇살이 부서지면 잔잔한 물비늘인 듯 제 앞에 강물을 내어주기도 하고, 저녁엔 달빛으로 아련한 찰랑임을 전해주며, 새벽녘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을 덮어주는 ‘참 사제’의 안수 같습니다. 바로 교구의 심장이라고도 하는 신학교, 그에 들어서면 가장 잘 보이는 구 도서관 그 옆, 수많은 성소이야기를 품에 안고 웅크린 ‘청기와 지붕의 대성당’입니다. 마치 우리 심장의 마음자리 같습니다.
2. 그리고 어제는 그 푸른 지붕에 또 빗물이 들이치자 마치 정어리떼가 수면 위로 오르는 듯, 소리가 참 좋았고, 저는 문득 정선아리랑의 곡조가 떠올라 홀로 흥얼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이 몸과 마음에 담겨있는 정서가, 그냥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구나 하며 느껴보았습니다. 나라는 포도나무 가지에서 가까운 가지로, 가지에서 줄기로, 그리고 뿌리와 땅을 향해 마음이 뻗어 나갈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한때 타지에서 생활하며, 어릴 때엔 그저 옛 세대의 것이라 여겼던 ‘아리랑’을 들으며 문득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었는데, 어제의 파아란 지붕은 비와 함께 그 라인강까지 여기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리랑~고개~고개로~날~넘겨주~게~” 노래는 음성버전으로...) 이 노래엔 고난의 길을 삶으로 극복해낸 우리네 정서가 담겨있고, 그것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걸어온 길임을 영혼에 들려주는 듯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함께 잘 건너가는 것이겠지요? 고맙습니다.
3. 다시 편지를 이어서 쓰는 오늘은, 파아란 지붕이 하늘을 쳐다보는 우리의 얼굴을 담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바로 성모님의 달 시월 하늘을 가득 닮아 있기 때문이죠. 지붕은 파란 빛깔, 몸은 붉은 빛깔, 여기 성당은 우리의 손길과 발길을 기억합니다. 저 붉은 벽돌에는 많은 귀한 이들의 기도와 오랫동안 쌓아올린 사제와 신학생, 수녀님과 직원 모두의 손길이 담겨 있죠. 이는 마치 푸른 신성과 붉은 인성,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들의 기도가 모여든 형상입니다. 누구를 닮았을까요? 만일 지붕이 푸른 겉옷이라면, 붉은 몸은 당신의 피 같은 마음으로 아들과 우리를 품고, ‘예’라는 응답의 기쁨을 알려주시는 동정녀 우리 어머니 마리아의 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안에서 들고 나고, 울고 안기고, 쉬고 찬미하는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 마음에 더 깊이 젖어드는 신학생들의 모습이, 오늘의 가장 찬연한 파란지붕의 기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는 ‘사랑’과의 깊은 만남이어서, 많은 이들을 배불리는 양식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품 같은 성당에서 성찬례적인 몸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으신 분... 오늘도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모시며, 누군가의 어려움과 고통 곁에 조용히, 더 깊이 성모님과 함께 서는 ‘응답의 달’입니다. 곧, 어머니의 파아란 지붕 같은 품이 되고, 누군가를 위한 마음자리가 되고, 못 박히신 그 사랑을 닮아가는 사람, 이렇게 함께 십자가의 길을 넘어가는 우리는, 같은 포도나무입니다. 오늘도,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성체아리랑’을 부르며, 희망의 고개, 고개로 주님께서 우리를 넘겨주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