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세기 동안 교회는 교회의 믿음의 기원이며 토대인 이 사건을 기쁘게 노래해 왔습니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부활 부속가).
부활은 생명이 죽음을, 빛이 어둠을, 사랑이 증오를 이긴 승리입니다. 이것은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승리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서(마태 16,16 참조)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그것도 불의한 단죄를 받으시고 조롱과 고문을 겪으시며 피를 흘리신 다음,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참된 희생 제물이신 어린양으로서 그분께서는 세상의 죄를 몸소 짊어지셨고(요한 1,29; 1베드 1,18-19 참조), 우리 모두를 악의 지배에서 해방하셨으며, 우리와 더불어 모든 피조물도 해방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께서 오랜 원수인 이 세상의 우두머리를(요한 12,31 참조) 단 한 번에 무찌르신 힘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 이전 삶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시어, 당신 자신의 육신 안에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는 길을 여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이 힘, 이 권능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창조하시고 생명을 낳으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충실하신 사랑,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승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구원 계획에 신뢰로써 당신을 내어 맡기심으로써(마태 26,42 참조) 당신의 싸움을 치르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끝까지 대화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찾기 위해 그분께서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종살이하던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 종이 되셨고, 죽을 운명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 죽음에 당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힘은 철저하게 비폭력적입니다. 그것은 땅속에서 썩은 다음 자라나, 흙덩이를 뚫고 싹을 틔운 다음 황금빛 이삭으로 무르익는 밀알의 힘과도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과는 더욱 닮아있습니다. 공격으로 상처 입은 다음에도 보복의 본능을 뿌리치고, 연민을 가득 지닌 채, 자신을 공격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참된 힘입니다. 이는 모든 차원에서, 곧 개인들과 가정들과 사회 집단들과 나라들 가운데에서, 존중의 관계를 증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추구하며, 자기 나름의 계획을 강요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계획을 만들고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며, 참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정의와 자유와 평화가 다스리는 그 땅에서는, 모든 이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사랑이시고 생명이시며 빛이신 같은 아버지의 자녀로 알아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당신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의 자유라는 극적인 현실을 훨씬 더 강렬하게 마주하게 하십니다. 빈 무덤 앞에서 우리는 제자들처럼 희망과 놀라움으로 가득 찰 수도 있고, 또는 단죄받으셨던 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과 계략에 의지하던(마태 28,11-15 참조) 경비병들과 바리사이들처럼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도 있습니다.
부활의 빛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놀라움에 놀라워합시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 마음이 변화되도록 합시다! 무기를 든 이들이 무기를 내려놓게 합시다! 전쟁을 일으킬 힘을 가진 이들이 평화를 선택하게 합시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평화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를!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그들을 만나려는 바람을 지니고 말입니다!
우리는 점점 폭력에 익숙해지고, 체념하며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에 무관심해지고, 갈등이 씨 뿌린 증오와 분열의 여파에 무관심해지며, 그 갈등이 낳고 우리 모두 체감하는 경제적 사회적 결과에도 무관심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즐겨 쓰시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무관심의 세계화’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일 년 전에 이 발코니에서 세상을 향한 당신의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며, 이렇게 상기시키셨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에서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큰 죽음에 대한 갈증을 목격하고 있습니까!”(urbi et orbi 메시지, 2025년 4월 20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언제나 죽음을 둘러싼 고통과 아픔, 그것에 따르는 괴로움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악에 체념할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죽음이 두렵다면 부활을 사랑하십시오!”(『설교집』 124,4). 우리도 부활을 사랑합시다. 부활은 악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가르쳐 줍니다. 부활하신 분께서 이미 악을 무찌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통과하시어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단순히 무기의 침묵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변화시키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평화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 마음에서 솟아나는 평화의 외침이 울려 퍼지게 합시다! 그래서 저는 다가오는 토요일인 4월 11일에 이곳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릴 평화를 위한 기도의 밤에 모든 이가 함께하도록 초대합니다.
이 축제의 날, 우리는 갈등과 지배와 권력을 향한 모든 욕망을 버리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 악 앞에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관심과 증오로 얼룩진 세상에 당신의 평화를 주시기를 주님께 간청합시다. 고통 속에서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를 기다리는 모든 마음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우리 마음을 엽시다. 오직 그분께서만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묵시 21,5 참조).
부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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