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박 신부님이 계십니다. 본당의 사순 절제 헌금을
시각장애선교회에 후원하기로 하고 신부님을 교중미사에 모셨습니다. 옆에서
부축하며 제의방을 나오는데 앞에 계신 할머니들이 아,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제단의 계단을 오를 때도 손을 꼭 잡고 안내를 하는데 할머니들이
웅성웅성하셨습니다. 앞 못 보는 신부님을 처음 보신 겁니다. 열두 해 전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박 신부님은 미사 경문을 다 외우십니다. 중도장애이다
보니 점자를 익힐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글자 그대로 꼭꼭 씹어
묵상하고 암기하십니다. 축성된 빵을 만지는 그 손 모양을 바라보니 제가 다
울컥해졌습니다. 손가락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정성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신부님 스스로 고백하셨습니다. “시력이 있을 때는 건성으로 미사드린 적이
많았는데, 시력을 잃고는 미사 한 대를 바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준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과연 어디서 이토록 정성스런 미사 집전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도 열두 해 동안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생각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어렵사리 만졌습니다. 그 여인의 손길과 박 신부님의 손길이 겹쳐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우리 손으로 만지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손길이 그 여인과 박 신부님의
손길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가득 차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