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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홍봉주 토마스 1(순교자 집안 출신,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 종교의 자유를 항상 그리워했던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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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썸네일 은총의샘
구독자: 20000  조회수: 2165회  유튜브등록일: 2022-03-12
홍봉주는 순교자 집안 출신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홍낙민(루카)이 그의 조부이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홍재영은 그의 부친이며, 모친은 정약현의 딸 정조이이다. 또 기해박해 순교 복자 심조이(바르나바)가 그의 부인이고, 성 홍봉주ㆍ영주 형제는 그의 사촌이다.

홍봉주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친 홍재영이 전라도 광주로 유배되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된 그는 부친과 아내가 순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배교해 석방됐다. 죄책감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1853년 최양업 신부를 만나 회개했다.

홍봉주는 이후 메스트르 신부의 명에 따라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를 입국시키는 임무를 맡아 상해로 가서 주교 일행을 모시고 이듬해 3월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베르뇌 주교의 복사로 봉사하면서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모든 일을 주님의 일로 알고 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격려했다. 그는 1865년 흥선 대원군에게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자고 건의했다.

흥선 대원군은 그러나 처음의 약속과 달리 선교사들의 만남을 미루다가 병인박해를 일으켰고, 홍봉주는 1866년 2월 23일 베르뇌 주교와 함께 체포돼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홍봉주는 포교들의 추궁에도 끝까지 교우들을 밀고하지 않고, 선교사들의 거처를 대지 않았다. 형벌 중에 잠시 마음이 약해졌으나 곧바로 뉘우치고 신앙을 증언한 뒤 3월 7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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