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은 이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화산(華山)’이라 이름 붙였다.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나바위’.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성당이름도 화산성당이라고 불러 오다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부터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 ‘나바위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나바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첫 마음의 성지’ 로 불리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고.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배편으로 귀국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845년 10월 12일 밤 8시 경 강경에서 좀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나바위로 정박한 이 일을 페레올 주교는 그의 편지에서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였다.
나바위 성지에는 화산 북쪽 암벽에 금강을 바라보고 마애삼존불상이 새겨져 있다. 나바위 성당이 설립되기 전 금강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사람들이 새긴 것으로 여겨진다.
암벽 위 암반에는 1912년부터 매년 6월이면 이곳에서 피정을 하던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를 위해 베르모렐 신부가 지은 망금정(望錦亭)이 있다. 그 옆 너럭바위 위에는 1955년에 세운
화강석으로 만든 4.5미터 높이의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있다.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높이 15자, 기념비 6자, 십자가 4자로 제작제작되었다.
김대건 신부 착지지는 성물방 우측으로 돌아가면 14처가 끝나는곳에 김대건 신부 일행이
상해를 떠나 42일간 바닷길로 입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의 크기의모형 배가 착지지에
전시되어 있다ㅓ
성당 뒤편에는 야외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동산이 꾸며져 있고, 화산으로 오르는 오른쪽 입구에는 2007년 9월 봉헌된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서 있고, 성모동산 왼쪽으로 정상까지 이르는 길에서 야외 십자가의 길 14처와 2대 본당신부였던 소세(Saucet) 신부의 묘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1995년 전주 교구청에서 옮겨온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목뼈) 일부가 모셔져 있다. 제대와 그 위의 예수성심상, 촛대, 감실, 세례대 등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해서 성당 건축 당시 들여와 조립 또는 설치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